장례식장에서 알게된 가문의비밀 썰 1

난 24살 공부하기싫어 빌빌거리는 공대생이고
어제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장례식장에서 조문객들 받는 중이야.
저녁을 먹으면서 친척들이랑 얘기를 하다가 우리 친가쪽 가문의 기구한 운명을 알게됬는데
지금 너무너무 복잡하고 심란한 상태야.
여기다 그 내용을 적을껀데 재밌게 읽어줬으면 참 고맙겠어.
너무 멀리 거슬러올라갈꺼없이 친할아버지의 아버지, 그러니까 증조할아버지때 우리 가문은 상당히 잘사는 집안이었어.
그때는 일제시대였는데 일제시대 당시 잘산다는것은 혹시 친일행위랑 관련이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지만 굳이 물어보진 않았어.
장례식장에서 어른들이 덤덤히 말하고계시는데 거기다가 "증조할애비 친일파였어요?" 이렇게 물어보는건 좀 그렇잖아?.
얼마나 부자였냐면 증조할아버지는 아들만 셋이 있었는데 밥먹기도 힘들었던 그 시절에 첫째,둘째는 경성제국대학(지금의 서울대학교), 막내는 고등학교를 재학중이었다고해.
여기서 막내가 나의 친할아버지야.
사실 글을 쓰는 와중에 도저히 의심을 뿌리칠수없는게, 한민족이, 모두가 고통받았던 그 시절에 아무 사건사고도없이 잘살았었다는 사실자체가...
그 당시 아무 문제없이 부유하게 살던 사람들은 친일프레임에서 결코 자유로울수 없다고 생각해.
아무튼 광복이 오기 전까지 집안은 말그대로 무사태평이었어.
광복의 기쁨도 잠시 한반도가 이념의 격전지가 되어 혼란에 빠져있을때
집안사람 몇몇은 정부요직까진 아니더라도 한자리씩 차지했어.
그리고 6.25전쟁이 일어났어.
집안사람들이 전부 부산으로 피난을 갔는데(그 이후로 부산에 자리잡아서 나도 고향이 부산이야), 자세한 사정은 모르지만
이때 첫째, 그러니까 친할아버지의 첫째형이 피난을 가던 와중에 어느 마을에 잠시 머물렀는데
며칠후 북한군이 그 마을로 쳐들어온거야.
그래서 큰 종조부는 마을사람들을 이끌고 북한군을 피해 어떤 장소에 숨어있었어.
시간이 지나도 북한군은 마을에서 물러갈 기미를 보이지 않고 마을사람들은 갈증과 배고픔에 허덕이다가
한 어린아이가 의식을 잃자 큰 종조부는 큰 결심을 하게되.
북한군에 홀로 투항을 한거야.
지금이야 서울 한복판 사람많은 길거리에 돌을 던지면 비대졸보다 대졸,대재가 많을 확률이 훨씬 크지만 그때는 그렇지 않았어.
북한군은 큰 종조부를 조사하던 중 종조부가 경성제국대학을 졸업한 사람이란 걸 알게됬고
이 점을 북한의 주체사상을 홍보하는데 있어서 굉장히 효과적일것이라고 판단했어.
제대로 교육도 받지못한 인민군이 총부리 들이밀고 말하는것보단 대학을 졸업한 남한사람이 말하는게
같은 남한사람들에게 주체사상을 각인시키기에 더할나위없이 편하고 효과적이었겠지.
아무튼 큰 증조부는 북한군에게 협조했고 북한군은 큰 증조부에게 남조선인민교육부관(기억이 잘 안나네 미안)이라는 꽤 괜찮은 감투를 줬어.
큰 증조부는 마을사람들을 불러 주체사상을 교육시키는 한편 당신의 지위를 이용해서 북한군의 물자를 조금씩 빼돌려서
마을사람들에게 몰래 갖다줬어. 덕분에 마을사람들은 전쟁와중에서 살아남을수 있었고.
이때는 전쟁중이었어. 나라가 망할지도 모르는 급박한 상황이었지.
큰 종조부의 저 행위를 기회주의자라고 비판해도 어쩔수 없다고봐.
하지만 뒤에 나올 가문의 몰락을 감안해도 난 증조부가 옳은 행동을 했다고 생각하고 그 점이 너무 자랑스러워.
국군이 낙동강방어선을 지키고 인천상륙작전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면서 큰 종조부가 있던 마을에도 변화가 찾아왔어.
북한군이 도망가고 국군이 들어온거지.
국군은 마을사람들을 하나하나 심문하기 시작했고 누군가 증조부를 밀고하고 말아.
국군입장에선 북한군이랑 몇주 동안 지냈으니 마을사람 전부, 혹은 최소한 몇명이라도
빨갱이가 되버렸을 것이라고 판단한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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